미국에서 태어나도 시민권 없다?!

대법원은 지난 27일(현지시간) "하급 법원이 연방정부 정책의 효력을 미국 전역에서 중단시키는 가처분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즉, 법원의 가처분은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에게만 적용될 뿐, 미국 전체에 일괄적으로 효력을 미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이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해 효력 중단 가처분을 받아낸 22개 민주당 소속 주와 워싱턴DC를 제외한 나머지 28개 주에서는 대법원 판결 30일 후부터 출생시민권 금지 정책이 본격 시행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보수 대법관 6명과 진보 대법관 3명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며, 미국 사법부 내의 이념적 대립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대법원은 출생시민권 금지 정책 자체의 위헌성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하급 법원의 결정이 전국적인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미국 수정헌법 14조에 명시된 출생시민권은 남북전쟁 이후 해방된 노예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오랫동안 미국 이민 정책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 20일 취임 직후, 불법 체류자나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에게는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특히, 어머니가 불법 체류 신분이거나 일시적 체류자이며, 아버지가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닌 경우 태어난 자녀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민주당 소속 22개 주와 워싱턴DC는 즉각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하급심 법원은 행정명령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효력 중단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하급심 결정이 소송을 제기한 주와 개인에게만 한정되어야 한다며 대법원에 심리를 요청했다. 행정부는 하급 법원 한 곳의 결정이 전국에 적용되는 것은 연방정부의 정책 집행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다수 의견을 통해 '전국적 가처분'이 의회가 연방법원에 부여한 권한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반면, 진보 성향의 커탄지 잭슨 대법관은 소수 의견에서 이번 결정이 행정부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헌법적 권리까지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고 NYT는 전했다.
판결 직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거대한 승리"라고 자축하며 이번 결과를 환영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출생시민권 금지 정책의 효력이 중단된 22개 주는 워싱턴, 캘리포니아, 뉴욕 등 미국의 주요 진보 성향 주들이다.
이번 판결은 미국 이민 정책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출생시민권의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법적, 정치적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이는 미국 사회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부모의 체류 신분에 따라 자녀의 시민권 취득 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은 수많은 이민자 가족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혼란과 파장을 야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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